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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라클이 지난 9월, 무려 4,550억 달러(약 630조 원)라는 경이적인 수주 잔고(RPO)를 발표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 숫자는 삼성전자 전체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규모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투자자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게 진짜 돈이 맞아? 그냥 멀고 먼 미래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종이 위의 약속' 아닌가?"
이러한 의구심은 당연합니다. 특히 장기 계약이 많은 클라우드 비즈니스에서 미래 수익의 실체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은 오라클의 4,550억 달러가 단순한 '희망 회로'가 아닌, 실제 현금 흐름으로 이어지는 '진짜 수익'에 가까운 이유를 해외 전문가들의 분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1. RPO, 정확히 무엇인가?: '단순 약속'이 아닌 '법적 계약'
가장 먼저, 우리는 수주 잔고(Remaining Performance Obligations, RPO)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RPO는 단순히 "앞으로 잘 팔릴 것 같다"는 예상이 아닙니다.
RPO는 고객과 이미 체결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legally binding contract)에 따라 미래에 제공해야 할 서비스와 그 대가로 받기로 확정된 금액의 총합입니다.
건설 회사에 비유해 볼까요? 한 건설사가 1조 원짜리 빌딩 건설 계약을 따냈다면, 그 1조 원이 바로 RPO가 됩니다. 아직 건물이 완성되지 않아 매출로 잡히진 않았지만, 이 1조 원은 미래에 확실하게 들어올 수익으로 간주됩니다.
클라우드 비즈니스에서 RPO는 향후 몇 년간의 매출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미래 성장의 가시성(visibility of future growth)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선행 지표입니다.
2. 핵심은 '단기 RPO': 1년 안에 매출로 전환될 금액
4,550억 달러라는 전체 숫자보다 월가가 더 주목한 것은 그 구성 내용입니다. RPO는 통상 향후 12개월 내에 매출로 인식될 '단기 RPO (Current RPO)'와 그 이후에 인식될 '장기 RPO'로 나뉩니다.
오라클은 이번 발표에서 이 단기 RPO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체 수주 잔고 중 상당 부분이 먼 미래가 아닌, 바로 다음 1년 안에 실제 회사의 재무제표(financial statements)에 매출로 기록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The Street wasn't just impressed by the headline number, but by the massive growth in current RPO. It validates their near-term growth trajectory and provides strong downside protection to revenue estimates."
"월가는 전체 헤드라인 숫자에만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단기 RPO의 엄청난 성장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오라클의 단기 성장 경로를 입증하며, 매출 추정치에 강력한 하방 경직성을 제공합니다."
-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기술 부문 분석가
즉, 투자자들은 적어도 향후 1년 동안 오라클이 흔들림 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확인한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가가 폭등한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3. 이 계약은 '진짜'인가?: 계약서에 서명한 고객들의 이름
RPO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누가' 그 계약서에 서명했는가입니다. 만약 계약 상대가 재정적으로 불안한 스타트업이라면 RPO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라클의 RPO를 채운 고객들의 이름은 그야말로 '올스타'급입니다: OpenAI, Meta, NVIDIA 등 AI 혁명을 이끄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입니다.
이들의 선택은 오라클에 단순한 매출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The OpenAI deal is less about the immediate revenue and more about the industry-wide validation. It effectively neutralizes the narrative that OCI is a second-tier cloud provider. For competitors, this is a significant strategic blow."
"OpenAI와의 계약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업계 전반의 기술적 입증이라는 의미가 더 큽니다. 이는 OCI가 2류 클라우드 공급자라는 기존의 인식을 사실상 무력화시킵니다. 경쟁사들에게 있어 이는 중대한 전략적 타격입니다."
- 테크크런치(TechCrunch) 선임 기자
이처럼 자금력이 가장 풍부하고, AI 기술에 가장 절박하게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이 맺은 장기 계약은 중간에 파기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 고객들의 이름 자체가 오라클 RPO의 신뢰성(credibility)을 보증하는 수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4. 월가의 또 다른 시선: 남겨진 리스크와 과제
물론, 모든 시장 참여자가 100% 낙관적인 것은 아닙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 엄청난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과제와 리스크를 지적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입니다.
"While the top-line growth is undeniable, we remain cautious about the margin profile of these large-scale AI deals. The immense capital expenditure required to fulfill these contracts could pressure free cash flow and overall profitability in the coming years."
"매출의 성장은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 대규모 AI 계약의 이익률 구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합니다. 이 계약들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본 지출은 향후 몇 년간 잉여 현금 흐름과 전반적인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 번스타인(Bernstein) 리서치 보고서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라클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전례 없는 속도로 데이터센터(data centers)를 건설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천문학적인 자본 지출(Capital Expenditure, Capex)이 필요하며, 이는 단기적으로 회사의 현금 흐름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즉, '매출은 늘지만, 그만큼 버는 돈은 적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우려입니다. 이러한 실행 리스크(execution risk)를 오라클이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가 향후 주가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결론: 단순한 숫자를 넘어, 기업의 '펀더멘털'을 바꾸다
결론적으로, 오라클의 4,550억 달러 RPO는 단순한 '종이 돈'이 아닙니다.
- 이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확정된 미래 수익이며,
- 상당 금액이 1년 내에 현금화될 예정으로 단기 성장을 보장하고,
- 세계 최고 기업들이 그 계약의 주체로서 신뢰성을 담보합니다.
월스트리트가 열광한 이유는 이 RPO라는 지표 하나가 오라클이라는 회사의 펀더멘털(fundamentals) 자체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느리게 성장하는 레거시 기업에서, AI 시대의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의 재평가(re-rating)가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수익성 유지와 실행 리스크라는 과제는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오라클의 미래는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높은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을 가진 새로운 성장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Is $455 Billion Just 'Paper Money'? - Digging into the Real Revenue to be Cashed in Within a Year